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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매월리 이야기
[FELLUCA 2008]/매계마을 프랜즈

원동석교수의 평-이석구 칠기장의 헌신

by FELUCCA 2008 2008. 7. 16.
원동석교수  유명인사들의 평

 

2007.02.13 17:10
 
 

공예의 으뜸 칠기 공예
                                  - 이석구 칠기장의 헌신-

민족 공예의 으뜸은 무엇일가? 이 같은 질문을 하면서 예술이 무엇인가를 한번쯤 떠올릴 필요가 있다. 흔히들 고려청자나 조선 백자를 떠올리며 도자공예라 말할지 모른다. 한국 도자가 한국미의 특질, 천한 민중의 손으로 만든 민족의 감성을 잘 함축하고 있는 것은 그간의 출토 유물이나 전승된 유물을 놓고 보면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론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나는 견해를 달리한다.
도자는 무엇보다 불의 힘으로 만들어진 산물이기 때문에 가마에 넣고 불에 굽는 과정의 기술, 비법의 힘이 절대 필요하는데 항상 절반 이상의 실패율을 각오한다. 그래서 가마를 자주 옮겨가며 남겨진 가마터에는 도자 파편이 언덕처럼 쌓인다.
반면에 칠기공예로 오면 처음부터 끝까지 장인의 숨결과 솜씨가 발휘되는 점에서 도자처럼 책임전가도 할 수 없는, 철저하게 장이의 미감이 살아있는 예술이다. 거기에는 불의 비법이라는 우연히 개입할 수 없다. 또한 도자가 그릇이라는 한정된 용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칠공예의 용도는 그릇뿐 아니라 의류, 목제품, 피혁물, 철기물 , 제사, 장례, 건축 등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더욱 전통 채색그림과 경쟁할 만큼, 눈부시게 화려한 채칠 기법을 발휘하게 됨으로 화가의 기능까지 겸한다.

한마디로 모든 장인의 솜씨가 종합된 예술,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움이 발휘되었던 귀족공예, 공예 중의 공예라는 지위를 누려온 역사적 사실을 일반인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유감스럽게 도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남겨진 유물이 적은 까닭에, 한편으로 칠공예 발전에 소홀한 탓에 , 가장 낙후된 전통유산이 되고 만 셈이다.

6,70년대 한국 경제의 성장은 장롱, 화장구로서 칠공예의 붐을 가져왔으며 수요층에 따라 상당한 고급품과 저급한 대중용으로 안방을 장식하였다. 외국으로부터 수입한 목재와 수입안료에 힘입어 재료 구입의 용이함과 공정 기구의 발달로 대량 생산이 가능할 정도로 크고 작은 공장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외양으로 보면 전통의 부흥이었다. 아마 그 시절이 한국화 붐처럼 최대 호황기이었다.
그러나 8,90년대를 지나 지금으로 넘어오면 국제 상품의 개방화 바람으로 화려한 외제 기구들이 직수입되고 또한 모방 제품들이 유행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쇠락할 운명에 놓여있다. 무엇 때문인가? 아니 이미 쇠퇴한 상태이다. 시장의 목가구점을 돌아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단순히 외제 선호 취향이라고 볼 것인가? 그것만이 아니다.

한마디로 국제 경쟁력이 없는 제품 구조의 취약성 때문이라고 본다. 우선 국제 경쟁력이 없다는 것은 전통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시대감각에 맞는 디자인 개발의 부재라고 말할 수 있다. 고려, 조선의 칠공예가 나전기법으로 정착, 발전한 것을 한국적 전통으로 인식하고 현대에서도 이를 답습한 것은 잘못된 편향이다. 나전기법은 상감기법의 일부이며 중국의 조칠, 일본의 칠화 기법처럼 다양한 기법과 안료 개발에 소홀함에 있었던 것이다.
미감이란 비교 측면에서 보더라도 흑칠(간혹 주칠) 바탕에 자개 빛깔의 문양을 대비한 것은 매우 단조롭고 평면적인 것이며 궁색한 것이다. 오늘에 와서도 이를 답습하는 것은 칠채의 풍요로움을 살리지 못한 장인 의식의 결여이다.
한, 중, 일 3국간에 공예 기법을 전수하고 경쟁함에 있어서 중국은 china로서 도자기의 별칭을 얻었다면 일본은 japan으로서 칠기의 별칭을 얻을 만큼 세계적 명성과 지위를 누리고 있다. 시샘이 나도록 가장 성공한 나라가 일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korea로서 얻을 만한 공예의 대표성, 내세울 것이 무엇인가?
솔직히 말하여 전통을 살리면서 현대와 호흡하는 공예다운 품목이 없다는 한심한 사실을 냉정하게 직시하여야 한다. 그뿐더러 현대의 감성에 맞게 새롭게 창안된 디자인의 개발이 없이 과거의 문양을 천편일률적으로 답습하고 있는 현상의 저변에는 저급한 상업적 취향에만 영합하고 자신의 독창성을 가지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진정한 칠공예가의 장인 정신이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도 간과할 수없다.
또한 이 같은 공예계의 부실한 현실을 지적하고 편달하는 공예 평론가나 애호가들의 지지층이 부재하다는 사실이 상업적 추락을 가속화하는 요인이자 공예는 예술이 아니다는 그릇된 편견까지 확산시키고 있다.
가까운 일본을 편견 없이 보자. 중국이 조칠기법으로서 조소적 형태미에 자족하였을 때 일본은 특유의 안료개발과 풍부한 칠채를 구사하여 회화를 능가한다는 칠화며 마끼에로서 국내에서의 으뜸한 지위와 칠공예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과시하고 있는 작가들을 배출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디자인 개발에 힘씀으로서 칠기는 일상용품으로서 기능만이 아닌 일본적 취향의 품위를 유지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인의 식생활 용기로서 가벼웁고 화려한 칠기그릇은 일반 가정집이나 음식집에 상용화되어 있으며 외국인의 시선을 끄는 백화점의 최고급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다. 전통과 현대가 상업적으로 잘 조화되어 있는 나라, 일본적 디자인의 성공 ! 우리가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언제까지나 외국산 수입의 유행만을 따르면서 자국의 칠공예 발전을 방치할 것인가?
21세기를 향한 발상의 전환과 선각적인 육성의 방안이 절실한 때이다. 다행스럽게도 오랜 칠공예 발전에 전념해온 이석구씨가 나전기법을 넘어선 칠화기법 쪽으로 선회함으로써 새로운 창의성을 가지고 일본 칠기와 맞서려고 도전장을 내었다. 그리고 오랜 각고 끝에 그가 만든 녹칠, 황칠, 주칠 배경 위에 덧붙인 나전기법이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꽃과 새, 혹은 민화무늬가 가히 환상적인 경지로 빠져들게 한다. 한마디로 예술화한 칠기작가로서 크게 성공하였지만 돌아오는 몫이 없다.
그 역시 한때 상업적으로 잘 나가는 작가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씁쓸한 칠공예 풍토위에서 자신의 장인정신을 고집스럽게 지킨다는 사실은 사라질 운명에 놓인 민족 전통에의 애착, 눈물겨운 헌신의 몸부림이다. 이 같은 정신 자세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원동석 ( 평론가/ 전목포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