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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매월리 이야기
WE/그리고 슬픈 일들

[한명숙 미니자서전 1] 별을 노래하는 문학소녀

by FELUCCA 2008 2009. 12. 14.

[미니자서전 1] 별을 노래하는 문학소녀

2008/03/20 11:38 | Posted by 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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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은
평안남도 평양시이다. 그 곳에서 나고 다섯 해를 살았다. 하지만 다섯 살에 일어난 한국전쟁은 고향에 대한 나의 기억을 유년으로 격리시켜 버리고 말았다. 다섯 살 코흘리개에게 무슨 고향의 추억이 아련할까마는 난 하시라도 내 고향이 평양이라는 것을 잊어 본 적이 없다. 이유는 부모님이 평생토록 가슴에 저미고 살아오신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전쟁이 일어나자 몇 달만 지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믿음으로 값나가는 집안의 전 재산을 고향땅에 묻어 둔 채 변변한 차림도 없이 월남하셨다. 그러나 그 짧은 몇 달은 평생의 한으로 남아 결국 50년이 넘는 세월을 고향을 그리다 끝내 타향에서 망향의 넋이 되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통해 분단의 한을 보고 느끼며 자라 온 내가 이후 통일과 평화운동에 참여하게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백하거니와 난 대학을 졸업하기 이전까지 현실과 세상물정에 까마득하게 눈먼 청맹과니였다. 나는 보들레르와 베를렌을 읊조리는 불문학도였으며 아름다운 생을 노래하는 작가가 되고픈 여리디 여린 감성을 지닌 너무도 평범한 문학소녀였다. 적어도 그를 만나기전까지...


꿈만 먹고 살던 순수 몽매한 나에게 한 명의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결국 나의 전 인생을 송두리 채 바꾸어 버렸다. 그로 인해 내 인생은 평범한 삶에서 고난에 찬 삶으로, 문학소녀에서 맹렬한 여성운동가로 변해버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변모시킨 키다리 아저씨. 그가 바로 내 남편 박성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