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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매월리 이야기
WE/그리고 슬픈 일들

[사설] 맑고 향기로운 삶, 꽃비 되어 흩어지다

by FELUCCA 2008 2010. 3. 13.
한겨레신문
 
[사설] 맑고 향기로운 삶, 꽃비 되어 흩어지다
 
법정 스님이 오늘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다. 유지에 따라 스님의 법구는 별다른 장례의식 없이 연화대에 올라, 흙과 물과 불과 바람으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그의 맑고 곧은 삶의 향기가 우리 곁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가슴에 더욱 또렷하다.

 

스님은 생전에 숱한 글로 ‘비우고 살아가기’(무소유)를 가르쳤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라는 말로, 소유를 위한 욕심이 자유를 늘리기보다는 부자유를 가져온다는 점을 가르쳤다. 불교적 성찰을 담은 정갈한 글로 대중적 인기가 높아지자, 그는 수행자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자 강원도 화전민 오두막으로 은거했다. 평생 그는 사찰 주지 한번 하지 않았다. 회주로 있던 서울 길상사에서도 자신의 방을 두지 않고 꼭 필요할 때만 대중을 만난 뒤 바로 떠났다. ‘더 많이, 더 빨리’가 전부인 줄 아는 세상 사람들한테, 탐욕과 집착을 버리고 베풀면서 살아감으로써 좀더 큰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그는 말과 글뿐 아니라 온몸으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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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사회악과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지도 않았다. 그는 1970년대 초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을 맡았으며 유신 철폐 개헌 서명운동을 비롯해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93년부터는 시민단체 ‘맑고 향기롭게’를 이끌면서 나눔과 베풂, 자연보호, 생명사랑 운동을 펼쳤다. 2008년에는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추진 방침을 두고 “운하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오직 땅값 오르기를 바라는 투기꾼들과 일부 건설업자들뿐”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그에게 수행과 세상을 바꾸는 일은 별개가 아니었다.

 

스님은 입적하면서도 무소유를 실천했다.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며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주고, 사리를 찾으려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고 했다. 특히 자신의 이름으로 된 모든 출판물을 더는 출간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름을 세상에 남기는 것도 부질없으니 이제부터 자신을 기억하지 말아달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스님의 맑고 곧은 삶을 기억하고자 노력하고, 그런 삶과 새로운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책 <무소유>를 두고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했던 생전 김수환 추기경의 말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