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 색소폰연주자 RICH박
16년 음악인생 “울어라 색소폰아”
“사공에 뱃노래 가물 거리면 삼학도~”
목포를 대표하는 노래가 있다면 단연 목포의 눈물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유달산 노적봉에서 목포의 눈물이 색소폰의 아름다운 선율로 울려 퍼지고 있다.
신사모자 깊게 눌러쓰고 빛나는 금빛 색소폰을 입에 문 그의 이름은 RICH박(박행한 40).
유달산의 아름다운 절경과 어우러진 분위기 있는 색소폰 소리는 유달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한층 더 낭만을 고조시킨다.
구성진 색소폰소리에 운동하시는 혹은 산책을 즐기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어깨를 덩실거리며 춤사위를 날린다.
어느덧 유달산의 명물이 되어버린 박행한씨. 리치박을 보기위해 유달산을 찾는 팬들도 이제 제법 된다. 신청곡을 적은 쪽지를 건네주고 이를 연주해주는 박행한씨와 듣는 사람들 얼굴엔 흥겨움이 가득하다.
리치박! 그는 어떻게 유달산까지 오게 된 것일까?
1969년 1월 17일생으로 제주도에서 5남1녀중 4째로 태어난 그는 제주 한림공고를 졸업 후 군대 기술하사관으로 지원 입대하였다.
군 생활 당시 취미로 여러 가지 악기를 배우다가 고음영역이 강한 색소폰을 손에 잡은게 지금까지의 인연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제대 후 결혼 문제 등으로 인해 제빵기술을 배워 제과점을 운영하며 하루하루를 보낸 그는 연주에 대한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광주의 한 라이브까페의 연주자로 일을 하다가 업소의 불경기로 인해 결국 고등학교 때 배운 용접기술을 살려 2005년 일로 공단의 용접공으로까지 오게 되었다.
낮엔 용접공으로 일을 하고 퇴근 후엔 색소폰을 연주하기위해 가까운 목포로 나와 연주를 할만한 장소를 찾아다니다 하당 평화광장의 무대로 장소를 정해 목포에서의 첫 연주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평화광장엔 각종 공연들과 행사가 많아 색소폰 소리가 묻혀 결국 유달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처음엔 지나가시던 사람들이 매우 의아해 하며 이런 거 왜하냐고 많이들 물으시더라고요.
하지만 이제는 제 색소폰 소리에 흥겨워하시고 신청곡도 함께 하며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 기분 좋아요“
이렇게 음악이 좋아 거리 공연을 시작하게 된 박행한 씨는 2006년 8월 26일 광주 동아 음악 콩쿨대회 실용음악 색소폰부문 대상, 2006년 11월 12일 제2회 목포 갓바위 예술제 실용음악 부문 최우수상, 2006년 12월 29일 전남 도지사 표창장등의 쾌거를 이룬다.
그런 그에게도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시청의 후원으로 전기를 끌어 쓸 수 있는 콘센트를 받아 시끄러운 발전기소리로부터 해방되어 수월하게 연주를 하며 자리 잡아가고 있을 무렵 어느 한 색소폰 연주자와 몇 몇 일행들이 갑자기 그 자리에서 연주를 시작 하게 된 것.
“당신 본래 고향은 광주니까 광주에 가서 연주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찾아오시진 않지만 한동안 많이 힘들었었던 때었었던 것 같아요.“
2007년 2월 작업 중 허리를 다쳐 장애인 6급 판정을 받아 공단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고 애로사항이 많지만 현실은 가난해도 본인의 가명처럼(RICH) 마음만은 부자로 살고 싶다는 박행한씨. 아프지 않고 거리에 설 힘만 있으면 색소폰을 불며 본인의 열정을 한껏 발산하고 싶다는 그의 말을 듣고 괜히 숙연해 지는 듯 하다.
“어떤 분들은 제가 목포시의 보조금을 받고 거리 공연을 하신다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저는 단지 음악이 좋아서 이렇게 거리에 서는 것이니까 그 마음만 알아주셨으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아요.“
5월에서 10월 까지 매일 저녁 07:00~10:00 유달산 노적봉 앞 리치박의 공연이 열린다.
유달산의 아름다운 절경을 즐기고 또 리치박 에게 신청곡을 한 곡 씩 건네며 리치박 씨의 16년 애환이 담긴 색소폰 소리를 함께 감상해 보는 것도 덥고 짜증 날 수 있는 여름철 피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출처] http://sem.dacgle.com/board/contentsView.php?idx=10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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