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아름다운 매월리 이야기
[FELLUCA 2008]/매월리 시하바다

시하바다 춤추는 화원반도 여기는 원초의 땅끝마을

by FELUCCA 2008 2008. 7. 23.

 

[탐방] 시하바다 춤추는 화원반도 여기는 원초의 땅끝마을
 
 
파도 높음, 파도 높음!
파랑주의보가 나돌지 않았는데도 출렁이는 파도, 에머럴드빛 바다의 춤사위가 거칠다.
이곳에 서면 목포항 구슬픈 남도가락이 아련히 들려오고,오래된 등탑하나 그리움으로 자맥질하는 옛 이야기가 스며있다.

춤추는 바다, 뛰노는 바다! 청옥빛깔 씨알바다의 물살을 거슬러 고요한 등탑 앞으로 포말이 일어 뱃길은 산산이 부셔지고 역사는 쓸쓸하게 흔적만 남았누나!
하늘하늘 날아드는 갈매기 떼와 목포의 옛 항구를 굽이쳐 내려온  배 한척이 언제 덜컹 무심한 돌섬에 갇혀 버릴지도 모르는 외진 이곳에 수류미 등대가 새 이웃을 만난지 오래다.

이제는 두 개의 등탑(매월리 등대)이 마주하고 있고 호화스런 여객선이 윙윙거리며 질주하는 여기는 화원반도 최서북단 땅끝마을.

목포의 관문이자 시하의 끝자락 끝물의 바다, 갯바위 손맛 끌리는 강태공의 미소 띤 얼굴로 바다는 화사한 옷을 입고 출렁이며 춤추고 있다.

시하바다는 울돌목을 거슬러 올라가 목포 앞바다까지 이르는 물목의 이름이다.
진도의 섬들과  신안의 다도해,  화원반도의 지형을 흐르고 있기에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시하바다는 때론 씨알 굵은 풍어의 바다가 되고 물때 기다리는 바다가 되어 거친 물살을 표류하다가 어느새 타래질 하는 민심의 바다가 되어 유유히 흐르고 있다.

태고부터 부여받은 다스리고 번성하라는 임무를 수행하려는 듯 사람들은 이름 짓는 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자신의 영역인양 갖가지 주장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어서 시하의 이름은 보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다.
영산호를 따라 내려오는 담수호와 목포 앞바다의 간수가 만나는 지점은 씨알 굵은 고기들이 많았다고 한다.
씨알이 굵다하여 씨알바다, 씨알바다 이렇게 불러졌다가 시하바다가 되었다는 설을 어느 교수가 논문에 발표한 적이 있다.

기계선이 없던 때 돛을 단 풍선(風船)들은 울돌목의 거센 물살을 감히 함부로 질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지날 때 물살의 흐름을 기다렸다가 썰물(河)때(時)에 맞춰 지나다녔다 하여 시하(時河)바다라 불리운다.

시하바다가 있는 장수리 마을은 한때 어느 방송사의 재미난 오락 프로에 첫 방송으로 소개되어 전국에 땅끝마을로 알려 지기도 했다.
마을 어르신들은 씨알바다란 소리를 듣더니 모두들 박장대소 까르륵 웃는다.
“그거는 아니여~ 저기 언덕배기에 올라가 봐봐”하며 손짓한다. 섬이 두 개가 보이는데 작은 섬은 실을 거는 곳이고 큰 섬은 씨아(목화씨 빼는 기구)란다. “마치 물레에 실을 걸고 목화씨를 빼는 씨아를 닮았다고 해서 씨아도라 했제, 그래서 씨아바다여”

시하바다에 떠 있는 시하도(時下島)는 과거 진도의 어부들이 풍랑을 피하려고 들렀다가 정착하여 오랫동안 몇 가구 살았던 섬마을이다.
한때 등대를 지키는 사람이 근무하고 마을에 6~7세대가 살았던 곳에 시하분교가 들어서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한사람만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물살이 센 곳은 대부분 고기가 없어 물가로 고기가 몰려 드는데  이곳 사람들은 뚝방을 치고 그물을 돌려 들어오는 고기를 잡으며 살아갔다.

이곳은 물목이라 목포항을 넘나들었던 뱃길일 뿐이었다.
바다위로 둥실둥실 떠있는 산의 행렬은 암태, 장산, 하의, 비금, 도초를 잇고 진도와 화원반도의 물살세기로 유명한 시하바다엔 갖가지 사연들이 많이 전해진다.

시하바다는 울돌목의 사나운 물이 소용돌이치듯 밀려와 곧잘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혀 침몰되기 일쑤였다.
침몰되는 슬픔과 함께 재미난 사연도 있다.
예전에 지역별로 국가에 세금을 냈는데, 그때는 모든 세금이 곡물로 내도록 규정돼 있던 터였다.
한번은 화산면 해창포구에서 곡물을 싣고 떠나던 배가 이곳에 도착해 심한 풍랑을 만나 그만 배가 뒤집혀 버리고 말았다.
당시 군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거리고 있다가 주민들이 진정서를 중앙정부로 보내자고 제안해 모든 지역민들이 진정서를 써냈다. 하지만 당시 화원면장격인 곽선주씨는 묵묵부답으로 눈을 감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필휘지로 산지해남(山地海南), 수지나주(水地羅州)라고 진정서에 8자를 써냈다.
당국에서는 이 글귀를 보고 물길이 속해있는 나주군에 세금을 대신 내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고 곽만집(80)옹이 얘기를 꺼냈다.

곽만집 할아버지의 가족은 이곳에 터를 잡고 10대 째 살아온 화봉리 주민이다.
마을 주민들은 모두가 고향을 떠나고 마지막까지 이곳을 지키며 손주들과 살아오고 있는데 다음 달이면 정들었던 고향을 보상하나 없이 강제로 떠나야 한다며 한숨짓는다.
모두들 외지로 떠나고 없는 이곳 주광리, 화봉리 사람들은 난데없는 실향민이 되어 대대로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잃고 현재 대부분 빚쟁이가 됐다.

그렇지만 마을이 관광지가 되고 발전되어진다는 소리에 한없이 뿌듯해 하고 있다.
목포로 간 이웃 할머니는 졸지에 빚쟁이가 되어 하루하루 근근이 먹고 살기위해 재활용 종이를 줍는 넝마꾼이 됐다며 걱정을 전한다.

보상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 험한 세상에 무엇을 하고 살아 갈 수 있을까?
관광단지가 조성되어지고 건물들이 하나둘씩 줄지어서면 이주자들을 위해 상가를 짓기로 약속했다는 정부가 그 약속을 어떻게 이행할 수 있을 것인지 이곳 사람들은 더 이상 믿고 싶지도 않는 일이다.

과연 넝마주의 할머니가 그리운 고향, 시하바다가 있는 이곳으로 돌아와 예전처럼 살아갈 날을 고대해도 되는 것인지...
정지승 기자/

[출처] http://wnn.yestv.co.kr/SubMain/News/News_View.asp?menu_code=NH34&tni_num=174912&bbs_mode=bbs_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