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든 시민들 입장이 곧 사제단 입장” | |
사제단 전종훈 대표신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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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6월3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국가권력의 회개를 촉구하는 비상 ‘시국미사’를 마친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사제단) 소속 신부들은 광장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1일 천막에서 만난 전종훈 사제단 대표 신부는 “촛불 민심의 ‘진원지’인 시청 앞 광장이 봉쇄되고 시민들이 공권력에 짓밟히는 모습을 보면서 사제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1987년 이전으로 후퇴하는 위기감을 느꼈다”며 “앞으로 탄압받는 촛불을 지키기 위해 광장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사제단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6월 항쟁’의 문을 연 ‘박종철군 고문치사’ 폭로 이후 21년 만이다. “분명히 해 둘 게 있다. 사제단은 거리로 나서고 싶지 않았다. 지난 5월2일 촛불집회가 시작된 뒤 사제단 내부에서도 ‘우리도 입장을 정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사제들의 눈에도 ‘재협상’을 외치는 촛불의 주장은 너무 당연한 것들이었고, 50일 넘게 평화를 유지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러나 일단 사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개별적으로 집회에 나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여학생이 경찰의 군홧발에 차이고, 시민들이 경찰의 방패에 맞아 피를 흘리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사제단은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6월3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국 미사’를 열었다. “지난주가 결정적 계기였다. 서울 세종로·태평로에서 벌어진 경찰과 시민들 사이의 유혈 충돌은 사제들에게 ‘대한민국이 80년대로 후퇴하는 게 아니냐’는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했다. 그리고 6월29일 촛불 민심의 ‘진원지’인 시청 앞 광장이 봉쇄됐다. 사제단은 시민들이 ‘촛불은 이대로 끝난다’는 좌절감과 실의에 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우리가 시민들과 고통을 함께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촛불 정국’에 대한 사제단의 입장은? “사제단의 입장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우리에겐 얻고자 하는 목적이나 의도가 없다. 굳이 말한다면 촛불을 든 시민들의 입장이 곧 사제단의 입장이다. 지금 촛불은 ‘고시 철회’와 ‘재협상’을 요구한다. 사제단은 시민들의 목소리가 국가 폭력에 의해 짓밟히지 않고, 더 크게 울려퍼질 수 있도록 시민들과 함께할 뿐이다.”
-정부는 촛불을 힘으로 끄려 한다.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폭력으로 진압할 수 있을까. 87년 ‘6월 항쟁’으로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민주주의를 얻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정착됐다고 본다. 사제단은 이명박 대통령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집권기의 역사를 무리하게 지우려는 데서 이 모든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부정할 때 나타나는 결과는 지금 보여지듯 ‘20년 전으로의 회귀’다. 국가 권력을 총동원해 국민의 소리는 틀어막은 채 ‘나를 따라오라’는 행위는 불행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고, 수많은 이들이 피땀 흘려 이룬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다.”
-김용철 변호사 사건 등 사제단의 현실 참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 공격은 늘상 있어왔다.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머지않아 사제단에 대한 ‘색깔론’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생명의 문제’를 논하고 있다. 내가 먹는 고기에 대한 불안감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먹는 것에 무슨 이념이 있고 좌우가 있는가. 우리 국민은 누가 앞에서 선동한다고 쉽게 손뼉치고 따라가지 않는다. 사제들은 촛불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위대하고 바른 국민인가 뼈저리게 느꼈다. 광장에 모인 촛불이 이를 증명한다. 색깔론은 이제 너무 상투적이다.”
-앞으로 계획은? “사제단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우선 촛불 민심의 ‘발원지’인 광장을 지키며 기도하고 매일 밤 미사를 열 것이다. 우선 광장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광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매일 촛불집회가 열리는 곳이다. 이 자리가 무너지면 국민들의 마음도 무너진다. 그 밖에 정해진 것은 없다. 국민과 함께 기도할 뿐이다.”
-사제단이 보는 사태 해결책은? “이 대통령은 스스로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섬긴다’는 말은 국민을 주인으로 모신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표리부동하다. 겉과 속이 다른 그런 모습에 국민들은 절망한다. 대통령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당신 스스로 말했듯이 진정으로 국민을 섬겨야 한다. 주인인 국민 뜻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사제단은 6월30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단식은 비움이다. 비워야 그 안에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비우지 못하면 다른 목소리나 주장을 담아낼 수 없다. 이 대통령도 그 점을 좀 알았으면 한다.”
김성환 길윤형 기자 hwany@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96559.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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