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를읽고] 소설가 이문열씨의 궤변 / 이연 | |
침묵하는 다수는 누구인가
그럼 촛불시위자가 소수란 말인가 촛불집회 못나가봤지만 나는 그가 말하는 침묵하는 다수가 아니다
6월12일치 <한겨레>에 난 이문열씨의 발언을 나는 몇 차례나 거듭 읽어야 했다. 마흔 후반의 전업주부인 나는 그가 하고자 하는 요지를 얼른 파악하지 못했다. “촛불시위는 위대하며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이라니. ‘위대한’은 그냥 알겠는데, ‘끔찍한’에서 걸리고 ‘포퓰리즘’에서 다시 걸렸다. ‘끔찍한’보다는 ‘무서운’이 더 나은 표현 아닐까 혼자 생각하면서, 나는 ‘포퓰리즘’이란 용어를 얼른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한마디로, “일반대중을 정치의 전면에 내세우고 동원해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체제”를 말한다는데, 이게 대체 뭔 말일까? 누가 대중을(촛불시위를) 동원해 권력을 유지하고자 한다는 말 같은데, 하면 이는 배후세력 운운하는 소리와 같은 말 아닌가?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또 촛불시위를 두고 ‘끔찍하기도’ 하다면서 그 이유를 “앞으로 정말 중요하고 큰 문제에 대해서도 또다시 이런 방식으로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했다. ‘앞으로 정말 중요하고 큰 문제’란 또 무엇일까? 지금 일련의 문제들보다 더 큰 문제라면 대체 무엇이 있을까? 국민소환제를 두고 한 말일까, 나는 일단 모르겠다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라니? 이렇게 평화적으로, 자발적으로 전개되는 수준 높은 시위가 어때서? 나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그 다음 문장을 세 번 읽었다. “그렇지만 이것을 승리로 만든, 침묵하는 다수의 선택도 저는 인정합니다.” 마치 승리해서는 안 될 것이 승리했다는 어투인 ‘이것’이란 촛불시위를 두고 하는 말일 텐데, ‘침묵하는 다수’가 이뤄낸 승리라니, 이게 맞는 말인가? 촛불시위란 침묵할 수 없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한목소리를 낸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나는 다음 문장에서 결국 어리둥절하고 말았다. “본의든 몰랐든 침묵함으로써 이것을 민의로 만든 것은 그들이 촛불에 동조하거나 최소한 묵인한 것이라 봅니다.” 여기서 ‘그들’이란 누구를 지칭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꼼꼼히 읽어보면, ‘침묵하는 다수’를 말하는 듯한데, 그렇다면 이문열씨는 촛불시위 참가자들을 전 국민 수에 비례하여 소수자로 보는 것일까? 그 소수자들이 ‘민의’를 만들고 말았다는 그의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일까? 다음 발언을 보면 그의 속내가 더 분명해지는 것도 같다. “지금 보이는 것이 정말 다수냐, 정말 민심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지만 그럼에도 나서지 못하는 것은 침묵하는 이들이 그것을 민의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렇게 그는 촛불시위에 대한 자신의 의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다음 “그걸 다 덮을 만한 정권의 실수”라는 표현을 고명처럼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나는 아직 촛불집회에 나가보지 못한 아줌마이지만, 그가 말하는 ‘침묵하는 다수’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나는 최근에야 조·중·동 신문과 다른 신문들의 차별성을 인지하게 된 늦터진 주부이다. ‘교언영색’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이번 그의 발언은 조·중·동의 어조와 똑 닮았다는 느낌이다. <금시조>의 작가, 이문열씨가 그립다.
이연/광주 남구 봉선동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readercolumn/293609.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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