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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그리고 슬픈 일들

[법정 스님 입적] “싸움의 원인은 소유욕”…스스로 비워서 큰 가르침

by FELUCCA 2008 2010. 3. 13.

“싸움의 원인은 소유욕”…스스로 비워서 큰 가르침

[법정 스님 입적] 법정스님이 우리에게 남긴것
‘먹이는 간단하게’ 늘 두세가지 반찬만
“소유는 덧없어…행복은 이 순간에 존재”

 

» 법정 스님의 법구가 12일 오후 전남 순천 송광사 문수전에 안치되고 있다. 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년 전 김수환 추기경이 뭇사람들에게 ‘사랑’의 가르침을 남겼다면, 법정 스님은 ‘무소유’라는 또 하나의 향기로운 가르침을 남겼다. 자신의 대표 산문집 <무소유>를 마지막까지 실천하려는 듯 그는 자신의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일체 아무도 것도 남기지 않으려는 그의 ‘무소유’는 세속에서 왕자의 호사를 누린 뒤 세속을 버린 석가모니 부처의 삶과도 다른 것이었다. 바닷가 마을의 홀어머니 아래서 자라던 그는 초등학교 때 학교에 낼 육성회비가 없어 선착장에서 일하던 숙부를 찾아갔다가 돈을 타지 못하고 울며 돌아서던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글재주가 있었음에도 원고지 살 돈이 없었던 차에 소풍을 가 보물찾기를 하고 상으로 탄 원고지에 처음으로 글쓰기 연습을 하며 즐거워하던 가난한 소년이었다.

 

보릿고개를 겪었던 이들이 한을 풀려는 듯 하나같이 돈에 목숨을 건 삶에 매달렸지만, 그는 욕망의 거센 물살을 역류했다. 법정 스님의 5촌 조카인 현장 스님(전남 보성 대원사 주지)은 “불일암 부엌엔 ‘먹이는 간단 명료하게’란 글이 쓰여 있었는데, 스님은 늘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손수 두세 가지의 단출한 반찬만을 먹고 지냈다”고 회고했다. 법정 스님이 불일암에 머물던 때 송광사에 출가했던 인도 히말라야 다람살라의 청전 스님은 “누추한 옷으로 지내는 모습을 본 스님의 한 신도가 당시로는 가장 좋다는 옷감으로 승복을 해 선물을 했는데, 자신의 몸엔 걸쳐보지도 않고, 행자인 내게 그대로 줄 만큼 소유에 집착하지 않았다”며 “그 스님의 뜻을 기려 33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도 그 옷을 입고 있다”고 했다.

 

외아들의 몸으로 홀연히 출가를 감행한 그는 물건은 물론 사람도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 해가 떨어진 뒤에는 어떤 손님도 암자로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 개인생활에도 철저했다. 따라서 대중적 환호와는 달리 그에겐 친구도 별로 없었다. 대신 그는 암자에 찾아온 다람쥐와 새와 달빛을 벗으로 삼으며 그 순간의 행복을 만끽할 줄 알았다. 불일암에서부터 40년 이상 그를 가장 가까이 모셨던 재가 신자로 꼽히는 원정거사 위재춘(64)씨는 “열반 전날 창문 밖으로 눈 쌓인 북악산을 바라보며 ‘북악산 자락이 참 좋다’고 하셨다”면서 “비록 병으로 호흡은 거칠었지만 열반 직전까지도 눈빛이 하나도 흐려지지 않고 그렇게 총총한 의식을 간직한 것은 무욕의 맑은 삶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 스님은 ‘인간의 역사’를 ‘소유사’(所有史)이며, 끝없는 인간들 간의 싸움의 원인과 고통이 ‘소유욕’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가 말하는 ‘소유’는 돈이나 물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금력과 명예와 사랑을 다 포괄하는 것이었다.

 

그는 “때가 지나도 떨어질 줄 모르고 매달려 있는 잎들이 보기가 민망스럽다”면서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산뜻하게 질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빈자리에 새봄의 움이 튼다”고 했다. 이 세상에서 변치 않은 유일한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라던가. 그 역설처럼 그는 우리가 남길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진리를 남겨주었다.그래서 그는 ‘이 순간’에 충실하며 ‘지금 행복하라’고 했다.

“자동차, 좋은 가구, 권력 등 이런 욕망들은 막상 갖게 되면 한동안 행복할진 모르지만 머지않아 시들해진다. 이들은 덧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은 이 다음에 이뤄야 하는 목표가 아니다. 지금 당장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봄날 활짝 핀 꽃들에서 행복의 비결을 들으며 마음껏 행복을 누리라.”


열반 전날 법정 스님은 고향인 해남의 미황사에서 금강 스님이 보낸 동백과 매화 꽃잎들을 하나씩 매만지다 “올라오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행복에 겨워 했다고 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