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수칼럼] 물대포가 촛불을 이길 수 없는 이유 | |
장정수칼럼 | |
장정수 기자 | |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자신을 자책한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국민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촛불집회를 보고 뼈저리게 반성했다는 이 대통령은 마치 자신의 참회가 실언이었다는 듯 촛불집회를 국가정체성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경찰의 유혈진압을 지휘하고 있다. 그의 강경진압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경찰은 자제력을 잃고 난폭해졌다. 촛불밖에는 든 게 없는 맨손의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물대포와 소화기를 난사하는가 하면 진압봉으로 두들겨 팼다. 심지어는 도망가는 시위대를 쫓아가 곤봉으로 구타하고 넘어진 여성을 짓밟기도 했다. 이러한 살기등등한 진압은 무능한 정부가 절제력마저 잃을 경우 국민들이 어떤 재앙을 입게 되는지를 일깨워준다.
이 대통령은 폭압적 진압으로 촛불시위를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는 미국과의 추가논의를 통해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는 들어올 수 없게 된 마당에 힘으로 촛불시위를 진압해도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서 시작된 촛불시위가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쇠고기 문제를 계기로 이명박 정부가 시장경쟁체제의 확대라는 명분 아래 추진하고자 하는 교육 자율화, 공기업 민영화, 식수 민영화, 의료 민영화 등이 자신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 다수의 생명과 건강, 행복한 삶의 보장에는 관심이 없고 ‘고소영’ ‘강부자’로 일컬어지는 일부 부유층의 불편사항 해소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본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런 인식이 무수히 많은 인터넷 토론의 장과 카페 등에서 토론을 거쳐 생성됐다는 점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현상은 쇠고기 안전 문제에서 촉발된 ‘정치적 자각’이 정치 현안들에 비교적 무관심했던 초·중·고 여학생들과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 대통령이 강행하려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부작용을 이들이 일상의 현장에서 가장 민감하고 무겁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정치적 의식화는 그 원인인 현실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쉽게 소멸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적 각성은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에너지를 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변혁적인 성격을 띠기 쉽다. ‘유모차 부대’와 ‘하이힐’ 여성들과 같은 새로운 여성층의 촛불시위 참여는 정치적 자각에 함유된 에너지의 분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날로 열악해지는 삶의 조건과 현실은 인터넷을 통한 공동체적 연대의식의 모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층의 정치적 자각은 인터넷의 확산에 따른 세계적인 현상으로서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의 오바마 돌풍도 유사한 현상이다. 아랍 세계의 반미주의와 극단적 민족주의의 고양도 아랍 세계가 안고 있는 절망적 현실에 대한 젊은 층의 정치 의식화에서 비롯됐다.
<문화방송> ‘피디수첩’ 수사와 물대포-곤봉 진압으로 상징되는 일련의 강경 몰이는 이명박 정부가 촛불시위의 배경을 얼마나 저급한 수준에서 인식하고 잘못 대응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촛불시위에 대한 오판과 잘못된 처방은 정치적 무능의 또다른 단면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생명과 건강을 향유하고자 하는 국민적 염원을 군사독재 정권처럼 물대포와 곤봉으로 억누르려 한다면 더욱 거센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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