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칼럼] 그래도 비폭력을 | |
김형태칼럼 | |
“형, 그냥 드셔도 돼요. 안 죽어요.” 마장동에서 쇠고기 파는 후배가 그랬다. 미국산 83톤이 검역을 마쳐 시중에 풀린단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궁리를 했을 게다. ‘그래도 믿을 만한 농협에서 가끔 한우 사서 먹고, 집 밖에서는 일체 안 먹는다. 설렁탕, 곱창구이, 소머리국밥, 혀가 들어간 어복쟁반, 비빔밥, 햄버거, 피자 … 라면은 또 어찌 하나, 삼시세때 몇십년 매끼니마다 이래야 하나.’
사정이 이쯤되면 민주주의와 인권이 크게 성장한 우리나라라는 자화자찬이 무색하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시절에야 독재에 반대 안 하고 가만히 있기로 하면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내 선택 자체를 가로막는 이번 쇠고기 문제는 도무지 도피처가 보이지 않는다.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음식을 ‘위험하다 생각 마라, 그냥 먹어라’고 강요하는 이번 조처는 인권의 기본을 망각한 무리수다.
요즈음 촛불집회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정당이 전혀 해결방도를 내놓지 못한 당연한 결과다. 쇠고기 그냥 먹으라는 후배와 나 사이에 놓인 건널 수 없는 강 때문에 요즈음 세종로 일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지고 피를 흘렸다. 이십대 초반의 젊은 전경들도 다쳤다. 우리가 먹고 싶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야 하듯 저 청년들도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전투’에 임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두 달여 국민들은 헌법 제1조를 거리에서, 인터넷에서, 구체적 생활현장에서 노래했다. 이제는 물대포와 곤봉, 돌이 난무하는 바로 이 폭력의 현장을 평화를 배우고 실천하는 생생한 배움터로 삼을 때다. 지난 29일 밤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젊은 여성을 전경들이 둘러싸고 몽둥이로 내려치고 발로 밟았다. 모두가 분노했을 게다. 길거리에 나가 버스에 줄을 매고, 물대포에 맞서 물병을 던지고, 날아오는 곤봉을 우산으로 맞받아 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났다.
그런데 퇴진의 목표가 된 정권 역시 나름의 정당성과 합리화 논리가 없을리 없다. 일제에 적극 협력했던 이완용이 그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양심을 속였다고 비난하는 것은 순진한 흑백논리다. 2008년 바로 지금도 일본 제국주의가 비록 강제력을 동원하기는 했지만 우리 사회를 근대화시켰다고 주장하면서 교과서까지 손대려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전혀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하는 양쪽이 과연 같이 사는 게 가능한 일일까. 사람의 뇌에는 감정이나 동정심을 관장하는 변연계라는 부분이 있다.
악어 같은 파충류에는 변연계가 없다. 전 인구 중 1, 2%는 이런 사람들이 항상 존재한다. 가족과 사회가 잘 보호해 주면 위험성 없이 그냥 저냥 평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잘못될 때는 이웃을 해하는 무서운 범죄자가 된다. 이성도 그렇다. 합리적인 이, 터무니없는 사람, 가지가지다. 내가 먹기 싫다는데 억지로 먹게 만드는 부류의 사람들은 인류 시작부터 끝까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저들의 존재를 부인할 수가 없다.
물병을 던지면 돌이 날아오고 그 다음엔 화염병을 던지고 이번에는 어느 수구 논객의 선동처럼 총알이 날아오는 것은 폭력의 정해진 수순이다.
간디는 이렇게 한마디했다. “비겁과 폭력 사이에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폭력을 택하겠다. 그러나 비폭력이 폭력보다 무한히 훌륭한 것임을 굳게 믿는다. 세계는 논리만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삶은 어떠한 종류이든지 폭력을 수반하지만 그 사이에서 가장 비폭력적인 길을 찾아가야 한다.”
김형태 변호사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96265.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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