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제왕의 종언 / 박찬수 | |
조지 부시 만큼이나 미국민들에게(어쩌면 민주당원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된 대통령도 드물다. ‘부시 때리기’(Bush Bashing)이란 말이 공공연히 언론에 등장할 정도로, 정책뿐 아니라 그의 지적 능력과 성격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글과 유머들이 재임 기간 내내 넘쳐흘렀다.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이명박 대통령을 소재로 한 유머나 댓글들을 보면, 미국의 ‘부시 때리기’에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2MB’는 귀여울 정도다. 심하다 싶을 정도의 비판과 공격이 대통령에게 가해진다. 대통령의 위엄을 찾는 건 이미 불가능하다. 이런 현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그를 상처 내고자 대통령의 권위를 땅바닥에 처박았던 보수 세력의 업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렇게만 볼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고 어렸을 적부터 경험해 왔던 대통령, 국민을 이끌고 나가는 절대권력으로서의 대통령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부시나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새로운 시대의 첫 주자인 셈이다.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 현대 미국의 대통령제를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명명했다. 대통령 권한이 너무 커지면서 통제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말은 ‘대통령의 힘’을 뜻하는 긍정적 의미를 획득했다. ‘제왕적 대통령’의 시초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30년대 강한 지도력으로 대공황을 극복해냈다. 2차 세계대전은 대통령 권한을 외교·국방 분야에까지 확장시켰다. 대통령의 지도력을 강화하는 게 곧 선이고 올바른 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 믿음이 깨지는 데는 70년대 워터게이트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정점은 정보·수사기관의 사적 활용이다. 대통령들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중앙정보국(CIA)이나 연방수사국(FBI)을 이용했고, 그 결정판이 리처드 닉슨을 하야로 몰고간 워터게이트 사건이었다. 그 뒤 대통령의 권위는 추락을 거듭했고, ‘제왕적 대통령제’는 빌 클린턴 시대를 거쳐 조지 부시 시대에 와서 막을 내렸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9·11 테러는 부시에게 다시 엄청난 힘을 줬지만, 대통령 권위와 권한의 지속적인 쇠퇴 추세를 되돌리진 못했다.
우리나라도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군부정권 시절은 접어두고라도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사문화 청산’을 내세워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구제금융(IMF) 위기 극복을 내세워 막강한 통치력을 행사했다. 검찰과 청와대는 한몸이었고, 국가 정보기관은 정권의 안녕을 위해 봉사하는 게 당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대 들어 이런 행태엔 제동이 걸렸다. 그게 보수 세력의 집요한 견제 때문이든 아니면 노 전 대통령 스스로 권력기관의 끈을 놓아버린 탓이든 간에, 그는 무제한적인 권력 사용에 불만을 느끼는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순응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불행은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국민들은 더는 대통령이 제왕이 되는 걸 바라지 않는데, 이 대통령은 과거 어느 대통령보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려 들었다. 환상은 현실 앞에 무력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인기있던 그가 불과 몇 달 만에 유례없는 정치적 위기에 빠지고 인터넷의 조롱거리가 된 건 이런 시대적 흐름과 관련이 있다.
이제 대통령은 스스로 권력 행사에 조심해야 한다. 최근의 사태에서 이 대통령과 청와대가 깨달아야 할 점이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검찰·경찰을 수족처럼 부리고, 방송을 장악해야 정권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제왕’이 되고픈 유혹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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