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광우병! 그 어마어마한 공포 / 박성숙 | |
독일서 10년 전 광우병 공포 확산
독일언론 연일 주저앉는 소 보도 피디수첩 사과하라니 국민 건강 말고 다른 목적 있음을 바다 건너에서도 느낄 수 있다
양은 냄비에 라면 끓듯 들끓던 광우병 사태가 독도 문제라는 새로운 이슈를 만나 시들해지는 느낌이다. 지난 10년 동안 독일에서 그 어마어마한 공포를 경험한 탓에 더욱 착잡한 마음으로 촛불시위를 지켜봤다. 그런데 이번엔 <문화방송> ‘피디수첩’에서 광우병에 대한 과잉 정보를 보도했다고 사과하라 난리다. 무언가 초점에서 한참 벗어난 느낌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보이지 않는 힘의 냄새가 다분히 풍긴다.
독일에서 광우병 공포가 만연하던 때는 지금부터 10년 전이었다. 공식적으로 발견된 것은 2000년 11월의 일이었지만, 이웃나라 영국의 심각한 사태를 지켜보며 이미 그 공포는 나라 안에 온통 확산되어 있었다. 당시 독일 티브이나 신문에서는 연일 광우병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고 집채만한 소가 휘청거리다 주저앉는 모습과 인간 광우병이란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환자의 휘청거리는 모습을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볼 수 있었다. 방송은 계속해서 ‘1984년 영국에서 최초로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소가 발견된 뒤 17만9천마리의 소가 감염돼 죽었고, 2004년까지 157명이 동일한 신경계통의 증상을 보이는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에 걸려 사망했다’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그때는 보수도 진보도 없었던 것 같다. 모두 다 광우병의 두려움을 세상에 알렸고 그 결과 쇠고기 소비량은 70% 가량이나 떨어지게 되었다. 사태가 약간 진정된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정책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뢰하는 독일인들도 그때는 아무리 독일 소는 안전하다고 선전해 보았자 믿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들은 정부의 정책에 저항하거나 방송의 진실 여부를 따지지 않았다. 그저 식탁에 다시는 쇠고기를 올리지 않는 것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대변했다.
날마다 찬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내게도 단연 가장 피부에 와닿는 문제였다. 가족의 건강이 내 손에 달려 있으니 아무리 검역을 철저히 거친 것이라 하더라도 어찌 손을 댈 수 있겠는가. 그때부터 최근까지 우리집 식단에는 쇠고기 들어간 요리가 사라졌고, 소시지와 같은 육류 인스턴트 식품을 살 때도 내용물을 자세히 읽어 보는 습관이 생겼다. 두 아이를 키우는 내게 그것은 10년 동안이나 장 볼 때마다 큰 스트레스였다.
독일 사람들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 정보에 민감하다. 광우병 사태가 나자마자 지나칠 정도로 상세한 정보와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가능할지도 모르는 위험성까지 추측해 자세히 알려주었다. 물론 그 때문에 판매량이 극도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역시 노인들이 안심하고 계속 쇠고기를 먹게 되었고, 최소한의 소비량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피디수첩의 진실 여부를 문제 삼는 것은 국민들의 건강보다는 다른 데 목적이 있음이 바다 건너 먼 이곳에서도 한순간에 느껴졌다. 이에 보조를 맞춰 기사를 써대는 보수 언론 기자들도 국민의 건강보다는 우매한 군중심리를 이용해 엉뚱한 정치적 명분에 기대어 보려는 아류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 건강을 담보로 보수니 진보니 나누는 것 자체가 참 어이없는 일이다.
한창 광우병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2002년 독일은 30개월 이상 된 소를 모두 도살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처리 방안의 하나로 모색한 길이 북한에 보내자는 것이었다. 물론 북한에 보내는 쇠고기는 검역을 철저히 거친 안전한 고기였다. 하지만 독일에 있었다면 결국 폐기처분해야 할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살던 나라에서 그 ‘쓰레기’를 돈을 주고 사들인다고 한다. 북한을 바라볼 때는 그럴듯한 명분이라도 있었다. 또한 독일인들의 도덕성으로 봐선 아무렇게나 퍼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철저히 검역을 거치고 안전을 확인한 다음에 제공한 것이기 때문에 한편에서는 믿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도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는데 상도덕을 무시하기 일쑤인 미국을 믿고 ‘쓰레기’를 그것도 돈을 주고 치워주다니, 참 이건 가슴 아픈 일도, 슬픈 일도 아닌 천인공노할 일이다.
생후 30개월 이상 된 소냐 아니냐가 문제는 아니다. 한번 그 공포에 휩싸이면 단지 쇠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라면이며 각종 쇠고기가 들어간 인스턴트식품까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무심코 먹게 될 수도 있다. 특히 외식 문화가 발달된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든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먹을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놓여 있다. 원천적으로 봉쇄하지 않으면 불매운동 정도로는 확실하게 안전을 지켜낼 수 없는 것이다.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건재한 이 독일에서도 그 공포에서 벗어나는 데 10년이 걸렸는데, 졸속 정책과 성숙되지 못한 상거래가 만연한 한국에서는 과연 어떨까. 광우병 공포 속에서 저녁 찬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주부들의 고충이 남의 일 같지 않게 아픔으로 다가온다.
박성숙 독일 아헨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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