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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그리고 슬픈 일들

[한명숙 미니자서전 9] 뜻하지 않은 선물

by FELUCCA 2008 2009. 12. 14.

[미니자서전 9] 뜻하지 않은 선물

2008/03/20 11:34 | Posted by 한명숙

남편과 나의 늦은 신혼은 다시 시작됐다.

오랜만에 찾아 온 행복에 나의 몸과 마음은 점점 평온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남편은 경제학에서 신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한국신학대학에 편입했다. 감옥에서 보낸 13년 동안의 삶 속에 남편에게 신앙은 크나 큰 삶의 일부분이 되어있었다. 나는 여성운동에 투신하기로 했다. 그 당시 한국 여성운동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하나는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이후 만들어진 기존의 보수적인 여성운동과 다른 하나는 1970년대의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탄생한 진보적 여성운동이다. 전자는 군사독재 정권에 협조하고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으며 후자는 독재에 항거하여 적극적으로 민주화 투쟁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나는 진보적 여성운동이 조직화되기를 희망했다. 난 운동과정에서 미진했던 이론적 공백을 학습하고자 이화여대 여성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창 대학원 논문을 쓰던 어느 날, 난 기대하지도 않았던 선물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임신이었다. 마흔이 넘어 아이를 가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에 너무 감사하고 감격했다.

 

 

 

 

 
1985년 내 나이 마흔 한 살에 첫 아이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난 내심 딸이기를 원했었다. 딸은 나의 평생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로를 챙겨주고 다독거려주는 삶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 서운함은 주변의 환호와 축하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 때만 해도 아들의 탄생은 가문의 영광이자 동네의 경사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된 나는 비로소 생명의 고귀함과 여성의 위대함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뜻하지 않은 선물에 감격했다. 남편은 아이를 고난에 찬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선물로 여겨 마치 보물을 다루듯 했다.

 


 

 

 

우리는 아이의 이름을 ‘길’로 지었다. 그런데 성이 문제였다. 지금은 부모의 성을 함께 쓰는 운동이 한창 벌어지고 있지만 그 때만해도 이름에 엄마의 성을 쓰는 것은 생뚱맞고 난데없는 일이었다. 나는 남편의 성에 내 성을 덧붙여 ‘박한 길’이라는 이름을 완성했다. 그러나 구습에 박힌 제도의 벽은 지금이나 그 때도 여전히 완강했다. 출생신고서의 성을 쓰는 칸에 나는 ‘박한’이라고 적어서 냈다. 동사무소가 발칵 뒤집혔다. 새로운 성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제갈’ ‘선우’ 씨도 있는데 ‘박한’이 뭐가 문제되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방법이 없다는 공허한 대답만 돌아왔다. 하는 수 없이 ‘박 한길’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하지만 아들의 이름은 분명히 ‘길’이고 성은 ‘박한’이다. 아들도 자신의 이름과 성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박한 길’은 우리 부부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며 삶을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