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자서전 4] 고문과 절망
2008/03/20 11:37 |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으로 나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때의 두려움으로 손이 떨린다. 나는 정말, 정말, 정말 그 모멸의 순간이 영원히 내 기억에 지워져 고문이라는 범죄를 알기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만 싶다. 나는 아직도 가끔 하나님께 나를 고문했던 그들을 진정으로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드린다. 하지만 아무리 짓이겨도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고문의 기억은 여전히 내 상념의 어두운 한 모서리에 우두커니 숨어 있다.
온 몸이 꽁꽁 묶인 채 밤새도록 구타를 당했다. 밤과 낮을 구별할 수 없었고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온 몸은 피멍이 들어 부어올랐고 부은 피부는 스치기만 해도 면도날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귓전에 울려오는 욍욍거림 속에 나를 고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아스라하게만 들려왔다. 셀 수 없을 만큼 정신을 잃었고 차라리 그 순간이 행복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고문의 고통보다 더 크게 나를 짓눌렀다. 그들이 나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빨갱이’임을 실토하라는 것이었다.
아! 나는 패배했다. 나의 믿음과 나의 각성과 나의 정의감과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진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인간의 믿음은 얼마만큼 우습고 허약한 것인가?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텅 빈 독방이 주는 중압감과 나의 소리를, 나의 마음을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뼛속 깊이 후벼 파는 절체절명의 외로움이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혀왔다. 아무리 호흡을 하려해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유리도 없는 커다란 옥창으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살을 저미듯 불어왔지만 목젖까지 컥컥 숨이 막혀왔다. 기어서 배식을 하는 식구통으로 머리를 들이 밀었다. 길고 좁다란 교도소의 복도가 보였다. 그곳은 밖이었고 내 몸뚱이는 여전히 갇혀 있었다. 저만치 교도관이 보였다. 사람, 사람을 보았다. 비로소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눈물이 야윈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죽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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