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자서전 6] 5월의 붉은 꽃잎은 바람에 날리고
2008/03/20 11:36 |
나는 2심이 끝난 후 서울에서 광주로 이송되어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난 차츰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희망을 주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간절하게 염원하던 이 땅의 민주화가 다가오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론적으로 순진한 착각이 되고 말았다.
1980년 5월 20일 아침. 요란한 총성이 광주교도소에 울려 퍼졌다. 광주교도소의 여사(女舍)는 교도소 앞 도로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교도소 담장 너머 머지않은 곳에서 수많은 군중의 함성이 들려왔다. 곧이어 성난 군중의 함성을 깨어 내기라도 하듯 날카로운 총성이 연신 울려왔다. 여사 벽에도 총알이 박히는 둔탁한 타격음이 들려왔고 내가 있던 방벽을 치고 튕겨나는 날카로운 총성이 섬광과 함께 귓전을 때렸다. 교도소 측에서도 일제 사격으로 응사하여 교도소 밖과 안은 순식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지만 재소자 모두는 분명 크나 큰 사태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열흘 후 교도소 당국은 소내 방송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발표했다. 광주에서 일부 폭도들의 난동이 있었지만 아무런 피해 없이 잘 해결되었으니 안심하라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나는 그 때서야 겨우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나는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삶의 의욕이 되살아났다.
그렇다면 헬기에서 흩뿌려지던 빨간 삐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열흘간의 감방 감금이 끝나고 교도소 운동장으로 나가던 날 나는 그 빨간 삐라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삐라가 아니었다. 오월 교도소 앞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던 선혈처럼 빨갛고 고운 진달래와 철쭉의 꽃잎이었다. 성난 헬리콥터 프로펠러의 돌개바람에 옥뜰의 곱디고운 꽃잎의 주검들이 소용돌이 친 것이었다. 오월이 되고 오월의 노래가 울려 퍼지면 난 파란 오월 하늘에 붉게 흩날리던 그 날의 꽃잎이 광주의 아픔과 함께 되살아난다.
1980년 5월 20일 아침. 요란한 총성이 광주교도소에 울려 퍼졌다. 광주교도소의 여사(女舍)는 교도소 앞 도로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교도소 담장 너머 머지않은 곳에서 수많은 군중의 함성이 들려왔다. 곧이어 성난 군중의 함성을 깨어 내기라도 하듯 날카로운 총성이 연신 울려왔다. 여사 벽에도 총알이 박히는 둔탁한 타격음이 들려왔고 내가 있던 방벽을 치고 튕겨나는 날카로운 총성이 섬광과 함께 귓전을 때렸다. 교도소 측에서도 일제 사격으로 응사하여 교도소 밖과 안은 순식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지만 재소자 모두는 분명 크나 큰 사태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교도소 측은 면회를 금지시켜 외부로 부터 일체의 정보를 차단했다. 때문에 밖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교도소 측은 재소자를 방에 가두고 일체의 사역을 금지시켰다. 우리는 그 열흘 동안을 전쟁 비상식량인 건빵 하나만으로 견뎌야 했다. 무료하고 불안한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교도소 운동장에서 요란한 헬기의 굉음이 들려왔다. 작은 옥창을 올려다보던 한 재소자가 놀란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삐라다!”
재소자 모두는 일제히 감방 꼭대기에 붙어있던 옥창을 올려다보았다. 아! 이럴 수가... 감방의 벽을 진동시키는 굉음과 함께 한 대의 군용 헬리콥터에서 는 빨간 삐라가 팔랑거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전쟁이구나! 재소자 모두가 전쟁을 직감했다. 북한군이 아니면 대체 누가 붉은 색 삐라를 뿌린단 말인가? 광주시민군과 진압군이 대치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재소자들은 교도소 밖의 교전 상황을 전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나라를 지키는 국군이 보호의 대상인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수 있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감방 안은 전쟁의 불안으로 술렁거렸다. 나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만약 현 사태가 전쟁이라면 정치범은 제일 먼저 총살되리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난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당시 광주교도소에서의 여성 정치범은 나 혼자였다. 간수들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으며 방안 식구들에게도 내가 무슨 말과 행동을 하는지 감시하도록 지시했다. 난 열흘 내내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중 삼중으로 에워 싼 감시망 아래 난 철저하게 고립되고 있었다. 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죽음이라는 공포와 이름 모를 열병에 시달려야만 했다. 심리적인 극한 상황에 열병까지 겹쳐지자 고문의 후유증으로 피폐된 나의 건강은 결국 망가져버리고 말았다.
열흘 후 교도소 당국은 소내 방송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발표했다. 광주에서 일부 폭도들의 난동이 있었지만 아무런 피해 없이 잘 해결되었으니 안심하라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나는 그 때서야 겨우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나는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삶의 의욕이 되살아났다.
그렇다면 헬기에서 흩뿌려지던 빨간 삐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열흘간의 감방 감금이 끝나고 교도소 운동장으로 나가던 날 나는 그 빨간 삐라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삐라가 아니었다. 오월 교도소 앞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던 선혈처럼 빨갛고 고운 진달래와 철쭉의 꽃잎이었다. 성난 헬리콥터 프로펠러의 돌개바람에 옥뜰의 곱디고운 꽃잎의 주검들이 소용돌이 친 것이었다. 오월이 되고 오월의 노래가 울려 퍼지면 난 파란 오월 하늘에 붉게 흩날리던 그 날의 꽃잎이 광주의 아픔과 함께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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