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감독 사임, 조금 비겁하다” | |
[매거진 esc] 김어준이 만난 여자 스포츠 전문 MC 이은하씨와 나눈 2010 남아공월드컵 총결산 | |
0 난 축구가 좋다. 생소한 크리켓부터 희한한 컬링까지 웬만한 스포츠면 다 넋 놓지만 그 어떤 종목도 축구 몰입도에 비할 수는 없다.
공의 행방을 좇으며 위기와 기회의 순간마다 수축이완을 전력 반복한 온몸의 관관과 신경 덕에, 중요 경기 하나를 풀타임 관전하고 나면 십중팔구 장딴지에 경직성 경련이 난다. 텔레비전 2m 전방 절대 고수하며 경기 내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게 90분을 만끽하고 나면 으레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축구는 삶에 대한 오마주구나.
야구와 비교하면 자명하다. 한 번은 우리 공격 한 번은 너네 공격. 횟수는 3번씩. 교대는 총 9회. 그러고는 그 모든 과정을 철저히 분업해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동작으로 반복 수행한다. 그렇게 기회는 균등하고 흐름은 분절적이며 동작은 예측 가능하다. 때론 심판들이 그 결과를 번복도 한다. 공평하고 또한 합리적이다. 축구로 치자면 승부차기와 세트피스만으로 기량을 경합하는 셈. 반면 축구는 공수교대도 작전타임도 판정번복도 없다. 90분 내내 일방 공격도 가능하고 몇십억 인구가 마라도나 핸들링 목격해도 하필 그 순간 그 자리의 심판 한 사람이 못 봤다면, 골이다. 그 모든 과정은 연속적이고 일회적이며 우연적이다. 마치 인생처럼. 삶에 번복이 있던가. 아무리 억울해도 특정 시점의 오류를 그 시점으로 되돌아가 뒤집을 순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사이에도 삶은, 하릴없이 흐른다. 불공평하게도. 불합리하게도.
그렇게 축구는 인생과 가장 근사하다. 그리고 그래서 축구는 언제나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 인간의 삶이 그 세계관의 총화이듯 말이다. 이번 브라질 축구가 실망스러운 건 그래서다. 실패해서가 아니다. 골을 선제하고도 공격 대신 쇄문하는 건 그 자체로 옳거나 그르지 않다. 그건 위험을 관리하고 기회에 반응하는 양식, 그 감독 세계관의 작동이 그러할 뿐이니까. 그러나 브라질 축구를 그렇게 운용하는 건, 마사이족더러 사자사냥 대신 보험설계 하라는 꼴이다. 반면 스페인은 시종 저 타고난 대로 싸웠다. 그리고 그런 팀이 우승하는 게 마땅하다. 그 맥락에서 이번 대회는 정의로웠다. 오심? 언제는 없었나.
내 유일한 불만은, 이 거대한 오락을 제대로 함께 나눌 여성들이 거의 전무하다는 거. 거리응원 여성들? 그건 축구 자체를 탐닉한 게 아니다. 축제 즐긴 게지. 이제 4년을 또 기다려야 하는 이 아쉬운 마당에 이 희열과 허탈을 함께 나누고 달랠, 축구 아는 여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났다. <문화방송> 라디오 <아이러브 스포츠> 진행하며 <축구 아는 여자> 출간한 그녀, 이은하. 그러니까 이건 엄밀히 말해 인터뷰가 아니다. 결승 이틀 전, 축구 아는 그녀와 함께 주고받은, 여성 관점의 남아공 결산 수다지. 자, 간다.
1 여자가 보는 이번 대회 어땠나. “다른 때보다 재미없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수비 위주였다. 선제골 넣고 나면 다들 수비하더라. 우리 아르헨티나전 때는 처음부터 그랬고. 여자들은 기술에 감탄하기보다는 골 장면에서야 흥분하는 건데. 우리 선수들이 수비하면 더욱 재미없다.” 세계 감독의 허정무화가 달성된 건가.(웃음) “그래도 8강, 4강 올라가니 여자들이 보기에도 우와, 공이 발에 붙어 다니는 게 확확 눈에 들어와 재미있었다.”
그 과정에서 특히 눈에 띈 선수는. “네덜란드 스네이더르. 그 친구가 공 몰고 갈 때면 깜짝깜짝 놀랐다.” 여자들은 팀 단위가 아니라 개별 선수 중심으로 보나. “그렇다. 여자들은 선수 중심으로 본다. 특히 꽃미남 위주로.(웃음) 이번 대회 재미가 덜했던 이유 중 하나가 크게 부각되는 유명 선수가 없었다는 거다. 예를 들어 잘생긴 카카. 골을 못 넣었다. 역시 골을 넣어야 눈에 띄는데.” 그런데 여자들이 축구 자체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건 왜 그런가.
축구만큼 원시적이고 남성적인 스포츠가 없는데. 룰도 간단해 이해 쉽고. 잘생긴 놈 한둘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그만하면 요소는 다 갖췄는데 왜 여자들이 남자들만큼 열광하지 않는가. “여자들은 선수 중심으로 보게 되는데, 그래서 아는 선수가 화면에 잡혔을 때라야 집중력이 생긴다. 그 선수의 멋진 몸매, 화려한 움직임에 감탄하며. 그래서 카메라가 중요하다.”
하긴 2002년, 아줌마들이 최진철을 섹시하다 했다.(웃음) 전적으로 카메라 덕이다. 몸짱들이 땀 흘리며 말벅지 뒤틀리고 서로 뒤엉키는 장면이 슈퍼 슬로로 화면 전체를 덮었으니까. 최진철마저 섹시한 거다.(웃음) “그렇다. K리그가 카메라 6대 돌리는데 월드컵에선 20대 이상이다. 그동안 보던 축구와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거다. 20대 이상 카메라 돌리는 프리미어리그는, 그림이 나오니까 여성팬들도 많다. 그리고 그 선수들의 애인과 부인들, 왁스(WAGs: Wives and Girlfriends)라고 하는, 대부분은 집안도 좋고 모델 출신도 많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 입장에서는 그 왁스에 대한 동경까지 더해진다.”
그렇다. 2002년, K리그 팬이 되자는, 그러지 않으면 나쁜 놈이라는 죄책감 마케팅 펼칠 게 아니라 역시 카메라 대수를 늘렸어야 했다. 그렇게 욕망 마케팅을 했어야 했다. “사실 K리그도 프리미어리그에 비해 그렇게 스피드 떨어지지 않는다. 여러 카메라로 그림 빨리 돌리면 그만한 효과가 난다.” 동감한다. 프리미어리그 경기 실제 본 적 있는데 그렇게 빠르지 않다. 그런데 K리그 중계는 저 멀리서 무슨 풍경화처럼 보여준다. 졸린다.(웃음) “아, 유니폼도 중요하다. 말 근육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사실 수트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게 축구선수들이다. 170대 후반에서 180대 초반까지 거의 일정한 사이즈에 군살 없는 몸매니까. 야구선수들은 굵기가 다 다르고. 농구, 배구는 너무 길어 좀 싱겁고.” 다만 축구선수들은 평균적으로 촌스러운 얼굴이 더 많다는 거.(웃음)
2 감독 이야기도 좀 해보자. 한 사람의 여성 팬으로 허 감독의 장단점은 뭔가. “장점은 선수들을 정말 잘 아우른 거. 선수들을 격려하는 법을 아는 거 같다. 그 점은 옛날과 많이 달라진 거다. 박지성 선수가 그 변화에 분명 영향을 미친 거 같다. 과거 우리 감독들은 선수들과 소통이 잘 안됐다. 이영표, 박지성이 지도자 되는 세대가 되면 분위기 정말 달라질 거 같다.” 동감. 그동안 우리 감독들은 선수들이 뛰기도 전에 긴장만 시켜온 게 사실이니까. “아쉬운 건 선수 기용이다. 소심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오히려 일본 오카다 감독의 무모한 자신감이 부러울 정도였다.” 나로선 가장 아쉬웠던 게 임기응변 능력이다. 전략이란 상황에 따라 실시간 수정되어야 한다. 모두 정신없을 때 오로지 혼자 정신 차리고 딱 끊어 선수 교체하고 흐름 바꾸라고 감독 있는 거다. 히딩크가 이탈리아전에서 모두가 멍할 때 아무도 생각 못 한 홍명보 빼고 공격수 모조리 투입한 것처럼. 오범석, 차두리 논란 역시 월드컵 전부터 그렇게 정해놓은 걸 못 바꾸는 거다. 전장의 야전사령관으로서 돌발 상황에 대처능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전술적 실패를 변호하느라 선수들을 끌어들인 거. “공감하는데 그래도 그런 걸 언급하는 게 주저되는 것이 감독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쉽게 이야기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들을 가까이에서 취재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니가 한번 감독 해봐. 그게 되나.”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입 다물 순 없다. 그건 그들의 운명이다. 프랑스 봐라. 대통령도 지랄한다.(웃음) 그게 싫으면 감독 안 하면 된다. “그래도 옆에서 보기엔 참 안쓰럽다.” 그건 대통령 해봤어, 안 해봤으면 말을 마, 하는 거랑 같다. 그게 싫으면 애초 대통령 왜 해, 씨바.(웃음) “근데 사임한 건 조금 비겁하게 보였다. 아시안컵까지는 가야 되는데. 이룬 걸 지키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건 축협 잘못도 크다고 본다. 많은 나라가 대회 끝나기도 전에 차기 계획 세운다. 일본은 대회 중에 칠레 비엘사 언급한다. 근데 우린 만날 끝나고도 우왕좌왕. 국적은 왜 따져. 50대 이하는 왜 안 돼. 거기서 나이가 왜 나와. 미친 거지.(웃음) “이회택 라인, 정몽준 라인 같은 파워게임도 문제다.” 아마 10년 이상 국내 감독 못 앉혀서 쌓인 사람들 있을 거다. 평생 축구 한 우리가 우리 대표도 못 맡나 하는 자괴감도 있을 거고. 있으라지 뭐.(웃음) 그들 소수 자존심 위해 한국 축구가 기회를 희생할 순 없는 거다.
“일본은 브라질 대회 벌써 준비했더라. 근데 우린 감독도 못 정했으면서 갑자기 브라질까지 맡긴대. 어머, 저거 또 한 2년 하다 접겠구나 했다.(웃음)” 이제 국내 감독의 경험치가 현역 선수들의 그것에 못 미치는 시대가 왔다. 예전엔 50년 축구 경험이 20년 축구 경험을 당연히 압도했다. 하지만 박지성만 해도 세계 톱 선수들을 몇 번이고 직접 상대한 경험이 있다. 감독은 없는데. “사실 이번 성공은 선수들이 만들어 낸 거다. 그걸 이번에 됐으니 한국 감독이 된다고 바로 연결하는 건 무리다.”
3 선수 이야기도 해보자. 여성들이 보는 박지성은 어떤가. “정말, 열심히, 잘 뛴다.(웃음) 신뢰 간다. 그런데 일대일로 인터뷰해도 좀 차갑다. 활짝 웃는 인간적인 모습이 좀더 부각됐으면 여성들에게 훨씬 사랑받을 텐데. 근데 박주영은 더 우울하다.(웃음) 아마 오픈됐을 때 받을 수 있는 상처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더 열어주면 여성 팬들이 열광할 수 있을 텐데. 대표적인 예가 차두리다. 옛날엔 기자들이 마이크 갖다 대도 휙 지나쳐서 기자들에게 욕 많이 먹었다. 근데 독일 가서 많이 달라졌다. 이제 소통하는 법을 안다. 특히 자신의 감정을 얼굴에 완전히 드러내니까 여성들이 감정이입 할 수가 있다. 아, 쟤가 너무 슬프구나. 울면 같이 슬퍼진다. 반면 박지성은 아무리 힘들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표정으로 뛴다.(웃음) 이동국은 정말 안타깝다. 12년을 뒤집을 슛이었는데. 비만 안 왔어도. 반면 이정수, 얼마나 운 좋나. 그냥 공이 날아가 발에 탁 맞아.(웃음)” 축구가 원래 운의 경기 아니겠나. 누가 운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느냐가 바로 실력이고.
정성룡은 어떤가. “경험 부족이 보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운재로 할 순 없지 않나.” 신체능력은 뛰어난데 역시 경험에서 나오는 위치선정과 수비지휘 같은 건 부족했다. 정성룡이 막은 골 중에 이운재라면 못 막았을 골은 없었다. 하지만 정성룡이 먹은 골 중엔 이운재라면 막았을 골이 있었다. 근데 배가 너무 나왔어.(웃음) “아, 이청용은 국내 있을 때만 해도 너무 거칠다는 이미지였는데 유럽 가더니 플레이하는 게 여자가 보기에도 정말 재밌어졌다. 인터뷰할 때도 이야기를 너무 재밌게 한다.” 그럼 남자로 느껴지는 선수는. “음. 차두리.” 차두리에게서 어떤 걸 느끼나. “강.철.체.력.” 그럼 사귀고 싶은 선수는. “기성용!” 김남일은? “역시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뛰어야 멋있다.” 김남일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를 착각했던 거 같다. 이제 2002년의 몸이 아닌데.
다른 팀에서 데려오고 싶은 선수는 없었나. 난 스페인 이니에스타가 가장 탐나던데. “사비.” 어느 사비. “잘생긴 사비.(웃음)” 로번은. 외모, 자세 모두 노약자의 향기가 나는데.(웃음) “네덜란드에선 스네이더르. 스페인에선 사비. 우루과이 포를란도 좋다. 수아레스는 싫다. 얍삽하다.(웃음)” 골 넣는 다람쥐, 비야는. “염소수염.(웃음) 그리고 이탈리아는 누가 있더라.” 16강 떨어진 애들은 애기하지 말자.(웃음) 독일 클로제는. “골 많이 넣어도 매력적이지가 않다. 포돌스키는 차두리의 느낌이 난다.” 짜증난 축구동물 루니는. “확실히 리그로 피곤해 그런지 영국 애들은 다들 좀 짜증나 있는 거 같더라.” 호날두는. “생긴 게 촌스럽다.” 애처로운 꼬마, 메시는. “호빗족이 생각난다.(웃음)” 실족한 왕자, 토레스는. “골을 못 넣으니 역시 매력이 떨어지더라.” 수아레스 8강 핸들링은 어떻게 생각하나. “수아레스는 그전부터 얍삽했다니까. 평소 성격 나온 거라니까.(웃음)”
일본 경기는 어떻게 봤나. “트루시에가 첨엔 비난하다 나중엔 저거 트릭이다 했는데, 그 말이 맞나 싶더라. 경기력이 훌륭했다.(웃음)” 난 다르게 본다. 운수대통이었다. 조직력 올라오기 전 카메룬과 첫 경기 한 것도 그렇고, 덴마크 전 프리킥 두 골도 그렇다. 전반전에 프리킥 딱 두 번 차서 다 들어간 거 월드컵 사상, 내 기억엔, 없다. 무엇보다 우리 경기가 바로 전이었다는 거. 선수, 감독 모두 우리 경기 보며 전의 다지고 우리 실수 보고 영감 받았을 거다. 일본 의기양양 잡는 건 간단하다. 지금 붙자면 된다. 우리가 또 이긴다.(웃음) 난생처음 파라과이 응원했다.(웃음) 역시 라이벌은 못해주는 게 행복하다.(웃음)
그럼 가장 인상적인 감독은. 난 피노키오 할아버지 스페인 감독도 좋지만 인상적인 건 역시 마라도나.(웃음) 여전히 감독이 아니라 선수 하고 싶은 거 같더라.(웃음) “독일의 요아힘 뢰프. 선수까지 포함해 최고다.(웃음)”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 축구인데, 여자들은 왜 거리응원 가나. “주목받고 싶은 마음.(웃음)” 그 여자들이 K리그 보러 가야 한국 축구 사는데. “카메라부터 늘려야 한다. 그래서 스타 나오고 꽂히고 감정이입 할 선수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 역시 키워드는 감정이입이다.
여기서 남아공 결산 1차 수다는 끝이 났다. 여전히 아쉬우니 2차는 여자 심판, 여자 선수, 응원녀들과 함께. 오늘은 여기까지. 꾸벅.
PS- 개인적으로 이번 대회 상징어는 문어다. 문어 파울 때문만이 아니다. 이니에스타도, 로번도, 스네이더르도 다들 문어대가리였으니까. 아참 이번 대회 유일의 무패 팀은 3무의 뉴질랜드. 축구, 참 요지경이다. 이상.
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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